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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백세] 향기의 각성 中

선택받은 사람에게는 제각기 고유한 체향이 존재한다. 피어나는 꽃처럼 보드라운 향, 시원한 바람처럼 조금 차가운 향, 이슬에 젖은 풀잎을 닮은 향 등등.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인 백현의 향은, 소나무 향을 조금 닮은 까탈스럽고도 시원한 향이었다. 특유의 당당하고 굳센 향기. 자기중심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백현에게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향기였다. 그리고 변백현은 향기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향이 진한 편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백현을 좋아했다. 향을 맡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도 자신감이 넘치는 백현을 좋아했다.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 백현의 시선을 잡아끈 사람은, 장미향을 가진 오세훈이었다. 여자보다 더 가느다란 목,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치켜올라간 눈꼬리, 조그만 입. 저게 여우야 인간이야, 백현이 옆자리에 앉은 오세훈을 곁눈질했다. 문득 마주친 시선에 든 생각은, '예쁘다'였다. 자신도 모르게 계속 눈이 갔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백현은 세훈과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3년 중에서 2년을 같은 반. 까칠한 오세훈과 깐족대는 백현은 예상외로 잘 맞았다. 단지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백현이 오세훈을 괴롭히고 오세훈은 그런 백현을 발로 차주는 게 일상이었지만 말이다.


백현이 세훈의 목 뒤에 코를 묻었다. 야 징그럽게 뭐하는 짓이야? 세훈이 질색하며 바로 백현을 떼어냈다. 코끝에 묻어있는 장미향을 생각하며 백현은 입맛을 다셨다. 백현이 손에 쥔 펜을 내려놓고 오세훈을 향해 편하게 턱을 괴곤 입을 열었다.

"너, 나랑 한 번 잘래?"


얼척없는 백현의 발언에 세훈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돌은 새끼야, 그런 헛소리는 네 여친에게나 해. 세훈의 싸늘한 말에도 굴하지 않은 채 백현이 계속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생각한건데, 니 향 정말 좋아. 너 오메가지? 백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얼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고... 백현이 세훈의 몸을 대충 흝었다. 뭐, 몸도 괜찮겠지.

퍽. 세훈이 발로 백현의 다리를 찼다. 그리고 싸늘하게 대답했다. 다행이네, 내가 알파라서. 뭐? 백현이 눈을 크게 떴다. 니가? 세훈이 꼽냐는 눈초리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 알파다. 그러니까 닥쳐.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오세훈은 알파였다. 열성 알파. 분명히 저렇게 약한 향을 달고 있었으니 자신과 같은 알파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오메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백현이 펜을 움직이는 세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쉽네. 아무리 오세훈이 예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고 해도, 동족을 먹는 취미는 없다. 그래도 아쉬워. 백현이 입을 쩝 다셨다.



오세훈이 고개를 떨어뜨리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백현은 병든 닭처럼 고개를 마냥 떨어뜨리는 세훈을 지켜보고 있다가 제 손을 세훈의 목 안으로 집어넣었다. 차가운 손 탓에 졸던 세훈이 화들짝 놀라며 백현을 바라보았다.

"깼네."

"아, 진짜..."

세훈이 당장이라도 욕을 할 듯 입을 오물거리다가 결국 밀려오는 잠을 이길 수 없었는지 깝죽대는 백현을 무시하고 이번에는 아예 책상위로 엎드렸다. 절 외면해버리는 세훈에 백현이 내심 아쉽다는 목소리로 연신 물었다. 야, 자게? 진짜 자? 오세훈, 세훈아, 훈아, 진짜 자게? 진짜? 몇 번을 물어도 다 무시한 채 잠 속으로 빠져든 세훈을 바라보다가 백현도 세훈을 따라 엎드렸다. 세훈의 희미한 장미향이 공기중을 떠돌아다녔다. 백현은 이미 잠이 들어 제 말을 듣지 못할 세훈에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한테 시집 올래? 알파여도 너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

박찬열과 오세훈, 그리고 변백현 자신. 세 명의 시간, 아직까지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

"야, 강의 재미없다. 버릴래?"

"진짜 그럴래?"


진심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에 백현이 제안하자, 세훈이 고개를 제 쪽으로 돌리며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순순히 동의하는 세훈의 모습에 백현이 만족스러워하며 가방을 챙겼다. 이 과목 버리자. 이거 정식으로 들으면 백퍼 말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야.

근데 남은시간동안 뭐하지? 세훈이 물었다. 박찬열 불러서 낮술이나 하러 가자. 백현이 생각없이 대답했다. 그 말에 세훈이 눈쌀을 찡그렸다. 싫어, 나 어제도 마셔서 속 안좋단 말이야.


그런 세훈의 말에 백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그럼 니 자취방 가지 뭐. 배고파, 맛있는 거 해줘. 뭐? 뻔뻔한 백현의 말에 세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내 자취방이 니 집인줄 알아, 새끼가."

돈 내라, 싫다, 등등 뭐라고 항의하는 세훈의 말을 흘려듣고 있던 백현이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나갔다. 야, 야! 말도 없이 나가버리는 백현의 행동에 당황한 세훈이 빠르게 가방을 들고 백현을 뒤따라나갔다. 수업 도중에 갑자기 일어서서 나가는 두 사람에게로 강의실 안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쏠렸으나, 다행스럽게도 교수는 다른 곳을 보고 있느라 두 사람이 없어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휴 이 식충이들."



결국은 제 자취방으로 오게 된 세훈이 찌개를 먹는 백현과 찬열을 보고 한심하게 내뱉었다. 거지들아, 많이 먹어.​ 세훈이 쯧쯧거리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조그마한 자취방 안에 세 명이 있으니 뭔가 숨이 턱 막힌 느낌이다. 이왕 끓인 거, 나도 먹어야겠다. 먹으면 속이 좀 나아지겠지. 세훈이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고 있으려니 절 빤히 쳐다보는 백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 세훈이 눈쌀을 찡그리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역시 백현의 입이 열리고 어이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진짜 오세훈이 여자였으면 당장 결혼하는 건데.

 


"개소리야."



세훈이 단칼에 끊어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백현은 입을 나불나불댔다. 아니면 최소한 오메가였더라면, 억지로 안아서 임신하게 만든 다음에 내가 책임질 수도 있었는데.


"니가 뒤지고 싶어서 지랄을 하는구나."

세훈이 백현의 발을 밟았다. 그래도 닫히지 않은 백현의 입에서는 말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결국 세훈이 짜증을 있는 대로 내며 수저를 탕 내려놓으며 백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절 노려보는 세훈의 눈빛에도 굴하지 않은 백현이 피식 웃었다. 오세훈, 삐졌냐? 백현이 슥슥 세훈의 머리를 헝클었다. 세훈이 백현의 손을 쳐냈다. 아, 치워.

 

 


어느날부터인가, 오세훈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피곤해, 건드리지 마. 세훈이 날 선 목소리로 장난을 거는 백현의 팔을 쳐냈다. 너, 어디 아프냐? 백현이 평소보다 말이 없는 세훈에게 물었다. 손을 들어 오세훈의 이마에 가져다대었지만 열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기는 아닌 것 같은데. 세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좀 속이 안 좋아. 아까 먹은게 얹혔나. 저녁은 먹지 말아야겠다. 세훈이 펜을 내려놓았다.



시들시들, 시들어가는 장미꽃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한 잎 두잎, 떨어져가는 꽃잎들. 백현이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에는 그냥 희미하기만 한 향기였을 뿐, 그것 빼고는 안정되고 편안한 느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향기를 잘 맡는 편인 백현은 세훈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챘다. 안색이 어두워진 오세훈, 그리고 묘하게 전과는 달라진 느낌을 주는 체향. 속이 안 좋다며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는 오세훈은 갈수록 더 말라갔다.

2주. 3주. 한 달. 신경쓰지 않을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오세훈은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이 센 녀석이었다. 결국 보다못한 백현이 억지로 세훈을 자취방 안에다 쳐박아놓고 교수님에게는 진단서를 대신 내줄 테니 하루는 푹 쉬고 자고 오라고까지 했지만. 모르겠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

 

자판기에서 도르르 굴러나오던 캔을 집어들고 한 모금 마신 백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 수업이 끝나 와글와글한 복도 사이로 조금 전 같이 강의를 듣고 헤어진 오세훈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세훈에게 다가가는 박찬열도. 백현이 음료를 마시며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조금 쭈볏대며 오세훈에게 다가가는 박찬열.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찬열의 손을 내친 세훈이 걸어간다.


흐응? 둘이 싸웠나.

백현이 심심하게 생각했다. 세훈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찬열이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아갔다. 조그맣게 작아진 두 사람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오세훈. 그리고 그 손을 잡아내리는 박찬열. 잠시 후 두 사람은 다른 강의실을 찾아 길을 걸어갔다.

 

 

"음."

 

 

백현이 다 마신 음료수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 뭔가 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빌빌거렸는데 오늘 갑자기 건강해진 오세훈이 이상했고, 새삼스럽게 같이 걸어가는 박찬열과 오세훈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데, 자신이 모르는 게 늘어난 것 같다.

"변백현!"

백현이 절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같은 수업을 듣는 이지환이었다. 너 과제 했어? 물어보는 질문에 대충 대답하면서 백현은 두 사람의 생각을 계속 했다. 오세훈에게 깊게 밴 박찬열의 향기. 난초 향과 본래 오세훈의 장미향이 뒤섞여서 새로운 향기가 생겨났다. 박찬열, 오세훈. 백현이 걸음을 옮겼다.

 

 

요새들어 박찬열과 오세훈이 같이 다니는 것을 자주 보았다. 자신을 빼놓고선 단 둘이 있는 모습을 말이다. 백현이 호숫가에 앉아서 과자를 집어먹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옆에 앉은 백현이 손을 뻗어 과자를 집어먹으며 입을 열었다.

"너네 수업 아니었어? 휴강이냐?"

"어, 강의실갔더니 오늘 휴강이라고 붙어 있더라고. 딱히 갈 데도 없고 해서 그냥 여기 앉아있었어."


박찬열이 대답했다. 너도? 백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난 20분 뒤에 시작. 백현의 말에 세훈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여기있어? 너 다음 강의실이 어딘데? 세훈의 질문에 백현이 대답했다. 제 2공학관. 그 말에 세훈이 더더욱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거기까지 꽤 거리 있잖아? 여기서 이렇게 시간 죽여도 됨?"

백현이 아예 편하게 자리를 잡으며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상관없어. 지정좌석제니까. 백현의 대답을 들은 세훈이 그래 지정좌석제면 뭐, 하고 수긍했다. 와작와작,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 목 막힌다. 백현이 오세훈의 손에서 음료수를 뺏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목을 축인 백현이 빈 캔을 내려놓았다. 짜증난다는 눈초리로 절 쳐다보고 있는 오세훈.

 

 

"나도 목마른데 니가 다 마시면 어떻게 해?"

"새로 하나 사. 어차피 시간도 많잖아."

 

 

백현이 적반하장격으로 받아쳤다. 세훈이 저걸 죽여 살려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가 그냥 단념하고서는 과자를 집어먹었다. 마실래? 하고 오세훈에게 음료를 건네는 박찬열. 세훈이 고개를 저었다.

문득 백현의 눈에 세훈의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가 눈에 들어왔다. 새끼, 칠칠치 못하게. 백현이 속으로 생각하며 세훈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떼어주려 손을 뻗었다. 막 묻은 부스러기를 떼어주려던 순간.

 

 

"뭐야?"

"왜?"

 

 

제 팔을 턱하니 붙잡은 박찬열. 짝이 없는 질문만이 허공을 떠돌아다녔다. 자신을 바라보는 박찬열의 눈은 어딘가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백현이 짤막하게 말했다. 부스러기.

백현의 말에 찬열의 시선이 세훈의 입가에 향했다. 찬열이 세훈의 입가에 묻어있는 부스러기를 확인하고선 백현의 팔을 놓아주었다.

"세훈아, 너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 묻었다."

"어? 아."


세훈이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쳐냈다. 백현이 빤히 박찬열을 쳐다보았다. 공중에서 시선이 얽혔다. 박찬열과는 몇 년동안 알아왔기에 꽤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저 눈빛은 처음 보는 눈빛이다. 꺼름칙하다.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간다."

더 이상 같이 있기 싫어진 백현이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일어난 백현을 흘끗 쳐다본 세훈이 손을 흔들었다. 잘 꺼져. 백현이 세훈의 머리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알았다, 뭐가 이상했던 건지. 오세훈의 몸에 더 이상 제 향이 달라붙지 않는다. 약한 향 탓에 진한 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잠깐이라도 옆에 머물러있으면 오세훈의 몸에는 바로 제 향이 달라붙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오직 남아있는 것은 난초 향이 섞여버린,

 

새로운 오세훈의 체향.

 

*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가고, 그들중 몇몇과 인간관계를 맺고, 또 틀어진다. 사람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짧은 시간밖에 알지 못했지만 오랜기간을 사귄 것 같이 편한 사람이 있고, 꽤 오랜기간을 알고 지내와도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어색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지금 백현이 겪는 것은 후자였다.

박찬열과 오세훈. 전처럼 같이 학교를 다니고, 종종 같이 놀러가기도 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졌다. 예전과 달리 자신을 경계하는 박찬열의 시선이 느껴진다. 누구에게서? 오세훈에게서, 자신을. 오세훈을 감싸는 박찬열의 행동. 박찬열과 오세훈의 향은 이제 비슷해져, 그들과 같이 있으면 제 향만 홀로 튀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다. 오세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 네가 알파가 아닌 오메가였다면 내가 널 좋아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알파였어도 어쩌면 상관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내심 속으로는 생각했다. 오세훈이 오메가였으면, 그래서 가질 수 있었으면. 그 약한 향을 짓누르고 지배해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으면. 한편으로는 오세훈이 자신과 같은 알파였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성향이니 본능에 잠식당해서 한순간의 실수로 딱히 틀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아쉬운 관계지만 만족했다. 오세훈을 갈구고, 가끔 때려주고 맛있는 것을 같이 먹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백현이 쓰러진 세훈의 위에 올라탄 채 싸늘한 눈으로 오세훈을 내려다보았다.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현이 바닥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억센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세훈은 당황한 눈으로 백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무 생각없이 문을 열고 자취방 안으로 들여보내줬는데, 왜. 유난히 사나운 백현의 눈동자가 제 목을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 백현이 으르렁댔다. 오세훈.

 

 

"너한테서 암컷 냄새가 나."

 

 

백현이 씹어뱉었다. 전에는 이런 향을 풍기지 않았잖아, 너.

백현이 체중을 실어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세훈을 제압했다. 너, 오메가였어? 이렇게 지독하게 유혹하는 향기를 흘리고 다니면 어쩌자는 거야? 백현이 세훈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윽, 머리카락이 뽑힐 것만 같은 느낌에 세훈이 약한 신음을 흘렸다. 오세훈, 박찬열이랑 얼마나 많이 잤어.

 

 

"제발 안아달라고 애원했냐?"

"저리...가."

 

 

백현이 더 세게 세훈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악, 생생한 아픔에 세훈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왜 이렇게 미칠듯이 화가 나는 거지. 백현이 빨개진 눈가를 한 채 이를 악물고 있는 세훈을 내려다보았다. 단지 두 사람이 자신 몰래 갈데까지 갔다는 것을 알아서 화가 난 것 뿐인가? 아니면 오세훈이 거짓말을 해서? 그것도 아니면 자기가 아니라 박찬열이라서?


"변백현, 이거 놔."

머리카락이 뜯겨나갈 듯한 아픔을 참으면서도 오세훈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절 밀어내는 오세훈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도 코끝으로는 강렬한 향이 스며들어와, 하반신에 저절로 피가 몰렸다.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대답이 없자 밖에서 오세훈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들린다. 비키라고, 제발! 백현은 다급해진 세훈의 말을 계속 무시한 채 이제는 세훈의 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살결을 어루만졌다.

띠띠띡, 도어락의 번호가 눌려지고 마지막으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훈ㅇ..."

 

 

밝은 목소리로 오세훈을 부르던 박찬열의 목소리가 끊겼다. 조금 뒤면 시작될 큰 싸움을 예상하면서도 백현은 세훈의 입술을 아프게 물어뜯으며 생각했다. 넌 대체 뭐야, 오세훈.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관계가 끊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관계는 틀어진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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